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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테라피

요가의 철학과 의미

by 요가테라피 2024. 1. 15.

요가

요가의 철학과 의미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요가는 극히 미요한 과학에 기반을 둔 고대의 기술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룹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요가를 수련하다 보면 일정 시간이 지났을때 수련생은 평화로운 느낌과 자신의 환경과의 일치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요가 수행이 몸을 강하고 유연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가가 호흡계, 순환계, 소화계,  그리고 호르몬계의 기능을 개선시킨다는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다 주고 마음이 맑아지게 하지만 이는 다만 요가의 궁극적인 목표인 사마디 혹은 자아실현에 이르는 여행길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파탄잘리에 의하면 요가의 목표는 대립되는 여러가지의 충동과 생각으로 빚어지는 혼란을 잠재워 평온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충동은 마음에 그 책임이 있는데, 마음은 본래 이기주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부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고통과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편견과 선입관이 솟아납니다. 요가 과학은 심장과 뇌, 두 영역의 지성에 집중합니다. 심장의 지성은 때때로 근본 마음 이라고도 하는데 , 그릇된 자만심의 실질적인 대리자로서 뇌의 지성을 교란시키고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동요하게 합니다. 

 

파탄잘리는 이러한 고통을 다음과 같이 육체적인 질병, 마지못해 일하는것, 의심, 무관심, 게으름, 감각적인 만족에 대한 갈망, 그릇된 지식, 싫증, 몸의 불안정 , 불안정한 호흡, 등으로 설명합니다. 오직 요가만이 이 고통을 절멸하고 마음, 감정, 지성, 이성을 단련시킵니다. 

 

요가의 의미중 아스탕가 요가로 알려져있는데 아스탕가는 8개의 가지 혹은 단계를 의미하며 세가지 수련으로 나누어집니다. 바히랑가 사다나수련은 일반적인 윤리 원칙인 야마와 자기 억제인 니야마의 형식을 띤 윤리적 실천 그리고 아사나와 프라나야마의 형식을 띤 육체적 수련을 포함합니다. 

두 번째 수련인 안타랑가 사다나는 감정적 혹은 정신적인 수련으로 프라나야마와 정신적으로 초연한 상태인 프라티아하라에 의해 성숙됩니다. 마지막으로 안타라트마 사다나는 다라나 디아나,사마디를 통한 성공이 기약된 영혼의 탐구입니다. 

 

이영적인 탐구에서는 몸의 역할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몸, 감각 마음을 각각 전차, 말 ,고삐에비유합니다. 지성은 마부 , 영혼은 전차의 주인입니다. 전차, 말, 고삐 혹은 마부에 무엇인가 잘못이 있으면 전차와 마부는 곤경에 빠지게 될것이고 전차의 주인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파탄잘리는 요가 수트라 11장 28절에서 요가의 수행으로 몸과 마음의 불순물들이 제거됩니다. 그런다음 지성과 지혜가 성숙하며, 이 성숙이 존재의 중심으로부터 퍼져나와 몸, 감각, 마음, 지성, 의식과의 조화속에 작용합니다 

요가의 의미와 목표는 모순되는 충동들에 의해 빚어지는 혼란을 평온히 가라앉히는것입니다. 

 

아사나의 근본 원리

아사나는 요가의 주된 도구들 중 하나입니다. 아사나는 육체적인 차원으로부터 영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그영향을 미치는게 근본원리입니다. 요가가 전인적인 수행이라고 불려지는것은 바로 이런 이유인데 아사나란 외부의 자아와 내면적 자아 간의 소통을 이루기 위해 마음과 자아를 완전히 몰입시킨 채 육체를 다양한 자세로 두는 것입니다. 

 

요가 철학은 우리몸이 세 개의 층과 다섯개의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세 개의 층이란 인과율의 몸 미묘한 몸, 그리고 거친몸입니다. 각각의 층은 다섯개의 겹을 통해, 마음, 물질, 에너지, 그리고 순수 의식 안에서 작용합니다. 이들 겹으로는 아사나의 의해 다루어지는 해부학적겹, 프라나야마의 의해 다루어지는 생명력의 겹, 명상에 의해 조절되는 심리학적인 겹, 분별력을 가지고 성실하게 경전을 연구함으로써 변형되는 지성적인겹 등이 있고 일단  이 목표에 초점이 맞추어지면 더 없는 환희의 겹에 다다르게 됩니다.

 

하타요가 프라디피카는 요가에 관한 실제적인 논서로 15세기에 편집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저자인 현인 스바트마라마는 몸을 단련하여 영혼의 현시에 이르기까지 초보자가 밟아야 하는 여정에 대해 실제적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식을 통제함으로써 영혼을 통찰 할 것을 논하는 파탄잘리와는 달리 스바트마라마는 자신의 논서를 에저지 혹은 프라나의 통제로 시작합니다. 에너지를 통제함으로써 영혼을 통찰하는 것을 하타요가라 부르는 반면 의식을 통제함으로써 영혼을 통찰하는 것은 라자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타요가프라디피카에서 저자는 만일 마음이 감각의왕이라면 마음의 지배자는 호흡이라 말하면서 호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합니다. 만약 호흡이 잘 조절된 한결같은 소리로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마음은 평온해 집니다. 이러한 평온함 속에서 마음의왕 혹은 영혼은 의식뿐 아니라 감각, 마음, 호흡의 최고 지배자가 됩니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면 마음의 작용을 억제하는 효과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반응으로 인해 스바트마라마는 프라나의 통제가 지고의 의식, 혹은 삼매에 이르는 열쇠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요가가 이르고자 하는 목표는 평정과 평화의 상태입니다. 파탄잘리는 요가 수행자가 이러한 고요함이 요가의 은총으로 부터 떨어져 나가는 상태로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한 요가의 수행은 궁극적으로 영혼의 통찰로 귀격되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이어져 야만 합니다 

 

요가수트라의 세 번째 장인 신통품에서 파탄잘리는 요가의 효과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 현대인의 의식으로 보면 지이하게 여겨지겠지만 이 효과들은 인간 본성이 가진 잠재력을 가리킵니다. 이 영적인 힘과 재능은 차례로 정복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들이 덫이 되어 구도자를 요가의 참된 목적을 향한 길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영혼이 몸, 마음, 권력, 성고에서 오는 자만심으로부터 벗어날때 카이발리아 혹은 자유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요가 수트라의 네 번째 장으로 절대적인 해방에 대한 장인 해탈품에서 이러한 측면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요가를 규칙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환경과 시간의 희생물이 아니라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요가 수행자는 세계를 사랑하고 세계에 봉사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요가 차크라

요가 과학은 영적인 건강이 척추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들 하는 차크라 체계, 혹은 신경중심에 의해 활성화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주 에너지는 이 차크라 안에 감겨진 채로 존재하는데,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이 에너지를 일깨워햐 합니다. 현대의 기술 과학은 우리 몸의 상태을 점검하는 수단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우리가 성격, 인격, 혹은 선에 대한 잠재력을 판별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인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측면은 바깥쪽의 피부와 가장 내적인 영혼인 샥티 사이에 있는 부분입니다. 샥티는 마음 , 지성, 감정, 생명에너지, 나 라고 하는 의식 의지력과 분별력, 그리고 양심까지 포함합니다. 

이것들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저마다 다른데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신비롭고 독특한 것은 바로 그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가 용어에서 영혼은 푸루샤 샥티라부르는 반면 자연의 에너지인 프라크리티 샥티는 고대의요가 수행자들에 의해 쿤달리니라 불려지게 됩니다. 쿤달리니는 모든 사람에게 잡재된 힘으로 존재하는 신성한 우주 에너지입니다. 프라크리티 샥티가 잠에서 깨어나면 이것은 영혼의 바로 핵심인 푸루샤샥티를 향해 끌려갑니다. 

 

 이 우주에너지의 불은 요가의 불에 의해 점화됩니다. 불이 재로 덮여 있으면 그 불은 꺼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감각이 둔하거나 자만심, 방종, 질투 등에 의해 동기가 유발된다면 쿤다리니는 계속 휴면 상태에 들어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부정적인 자질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도록 오래 방치한다면 우리의 영적인 진화가 단순히 방해 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중지되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늘 건강이 중요하다는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요가의 옹호자들이 여러 세대 동안 알아 왔듯 우리의 육체적 조건이 마음 상태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고대 현인들은 완전히 건강한 몸을 얻기위해 몸의 차크라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론상으로 차크라는 뇌에서 꼬리뼈까지 척주를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척주가 육체적인 실재인 반면 차크라는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비록 육체적 속성을 가지지는 않으나 차크라는 몸의 모든 요소들을 지배합니다. 

 

 차크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바퀴 또는 고리를 뜻하는데 각 개인의 차크라는 그 안에 잠긴 형태로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교차점으로 몸과 마음의 상태를 결정짓습니다. 뇌가 신경세포나 뉴런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지적 기능을 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크라도 모든 생명체 안에 있으면서 영적인 에너지로 변환되는 우주 에너지인 프라나를 조절합니다. 영적인 에너지는 나디라는 통로에 의해 몸 안에 퍼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차트라는 그 영향력에 의해서만 감지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요가 수행자가 요가의 여덟 가지 수행단계를 모두 성취하면 차크라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지는데 이때 인간적 자아가 우주적 자아에 동화됩니다. 인체에는 모두 11개의 차크라가 있는데 그중 특히 중요한 것은 7개이고 나머지는 독립적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가장중요한 것은 사하스라라 차크라로 여기에서 에너지인 프라크리티 샥티와 영혼인 푸루샤 샥티가 결합합니다. 

 

요가의 수행은 모든 인간에 내재하는 신성한 에너지를 일깨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아사나와 프라나야마는 차크라를 열고 그에 대비하도록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디가 활성화 됩니다. 나디의 활성화로 차크라가 진동하고 에너지가 생성되는데 이때 생성된 에너지는 나디를 통하여 온 몸을 순환합니다. 차크라에 뿌리를 둔 감정은 신성한 에너지가 일깨워져 순환하면서 변화를 겪습니다. 자아실현을 얻기 위해 진지한 요가 수행자는 꾸준하고열렬한 수행으로 행복을 얻는데 방해가 되는 6가지 주요장애, 즉, 갈망, 탐욕, 열중, 질투심을 정복합니다.